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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판단 읽는 시간 4분

AI가 기획서를 써 주는 시대, 사람이 정하는 세 가지

AI에게 부탁하면 기획서가 몇 분 만에 나와요. 그런데 그 기획서로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지는 다른 문제예요. 25년 동안 기획을 해 온 제가 보기에, 기획의 결과를 가르는 건 문서가 아니라 사람이 내리는 세 가지 판단이에요.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부터 할지, 무엇을 버릴지요.

요즘은 AI에게 「배달 앱 기획서 써 줘」라고 하면 몇 분 만에 그럴듯한 문서가 나와요. 목차도 있고, 기능 목록도 있고, 화면 이름까지 붙어 있어요.

저도 매일 AI와 기획을 해요. 그런데 25년 동안 기획을 해 온 입장에서 보면, 이 문서들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어요.

기획서는 판단의 기록이지, 판단 그 자체가 아니에요. AI는 기록을 아주 잘 만들어요. 그런데 무엇을 기록할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해야 해요.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 꼭 정해야 하는 건 세 가지예요.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부터 할지, 무엇을 버릴지요.

첫째, 무엇이 중요한지 정하는 일

AI가 쓴 기획서는 대체로 고르게 좋아요. 회원가입도 꼼꼼하고, 알림도 꼼꼼하고, 마이페이지도 꼼꼼해요. 모든 게 같은 무게로 적혀 있어요.

노트 캐릭터의 여러 줄 가운데 한 줄만 파랗게 빛나고 기획자가 그 줄을 가리키는 장면
모든 화면이 같은 무게인 서비스는 없어요

그런데 실제 서비스에서 모든 화면이 같은 무게인 경우는 없어요. 예약 서비스라면 「예약이 확정되는 순간」이 제일 중요하고, 중고 거래라면 「믿고 연락해도 되는 사람인지 아는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이건 손님을 만나 본 사람만 알아요. 한 예비 창업자분과 이야기하다가, 그분이 정말 걱정하는 게 기능이 아니라 「손님이 첫 화면에서 바로 나가 버리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적이 있어요. 그 한마디로 기획서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고르게 좋은 기획서는 어디에도 힘이 실려 있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AI가 쓴 기획서를 받으면 먼저 형광펜을 들어요. 이 서비스에서 손님이 「아, 이거 좋다」라고 느끼는 화면이 어디인지 한두 곳만 칠해요. 칠한 곳이 없다면 아직 기획이 시작되지 않은 거예요. 칠한 곳이 너무 많아도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걸 정한다는 건, 다른 것들이 덜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 인정이 있어야 다음 판단이 쉬워져요.

둘째, 무엇부터 할지 정하는 일

중요한 걸 알았다면 다음은 순서예요. 돈도 시간도 한정돼 있으니까요.

달력 캐릭터가 블록 세 개를 줄 세우고 첫 블록만 빛나는 장면
무엇부터 할지는 대표님 사정을 아는 사람만 정할 수 있어요

AI에게 우선순위를 물어보면 꽤 논리적인 답을 줘요. 다만 그 논리는 일반론이에요. 대표님 통장에 몇 달 치 여유가 있는지, 첫 손님을 어디서 데려올 수 있는지, 대표님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운영량이 얼마인지는 모르거든요.

저는 순서를 정할 때 이렇게 물어요.

  • 이게 없으면 손님이 아예 쓸 수 없나요, 아니면 조금 불편할 뿐인가요?
  • 이걸 먼저 만들면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 이걸 나중에 붙이면 앞에 만든 걸 뜯어고쳐야 하나요?

마지막 질문이 특히 중요해요. 나중에 붙여도 되는 것과, 나중에 붙이면 공사가 커지는 것은 구분해야 해요. 이 구분은 서비스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아는 사람만 할 수 있어요.

셋째,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일

세 가지 중 가장 어려운 게 이거예요. 그리고 AI가 가장 못 도와주는 부분이기도 해요.

기획자가 부가 기능 장난감을 봉투 캐릭터에 담아 다음으로 미루는 장면
버린 기능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버전으로 가요

AI는 더하는 데 능해요. 「이런 기능도 있으면 좋아요」라는 제안은 끝없이 나와요.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이라서 거절하기도 어려워요.

기획에서 「안 한다」고 적는 건 「한다」고 적는 것만큼 중요한 결정이에요. 버릴 걸 정하지 않으면 범위가 계속 늘고, 출시가 밀리고, 정작 중요한 화면에 쓸 힘이 남지 않아요.

저는 기획 문서에 「이번에 하지 않는 것」 칸을 꼭 따로 둬요. 거기에 적힌 목록을 보면 그 기획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어요. 그 칸이 비어 있으면 아직 판단이 끝나지 않은 거예요.

버리는 게 아까우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버린 기능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버전 목록으로 옮겨 가는 거예요. 첫 버전을 열고 손님 반응을 보면, 그 목록의 절반은 사실 필요 없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AI는 어디에 쓰나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AI 덕분에 기획이 훨씬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기획자가 말하는 동안 노트북에서 화면 카드가 흘러나와 지도로 정리되고 폴더 캐릭터가 받아 정리하는 장면
판단은 사람이, 정리는 AI가 빠르게 해요

예전에는 판단을 내리고 나서 그걸 문서로 옮기는 데 며칠이 걸렸어요. 지금은 그 시간이 확 줄었어요. 대신 판단 자체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됐어요. 손님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고, 버릴 것을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어요.

플랜디도 그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아이디어 인터뷰에서 AI가 질문을 던지지만, 답하고 고르는 건 대표님이에요. AI는 그 답을 화면 지도와 화면설계로 빠르게 옮겨 줄 뿐이에요.

정리

  1. AI는 기획서를 빠르게 써 주지만, 기획서는 판단의 기록일 뿐이에요.
  2. 사람이 정할 건 세 가지예요.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부터 할지, 무엇을 버릴지.
  3. AI가 아껴 준 시간은 문서가 아니라 판단에 다시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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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한 줄로 시작하면 AI가 질문을 이어 가며 기획서와 화면 구조를 같이 잡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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